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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고 [슈퍼스타 감사용]을 보다--같은 소재 다른 결론 본문

감상_평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고 [슈퍼스타 감사용]을 보다--같은 소재 다른 결론

flogsta 2009. 12. 9. 18:20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박민규 (한겨레신문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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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감사용
감독 김종현 (2004 / 한국)
출연 이범수, 윤진서, 공유, 류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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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에 신청은 해 놓았지만 먼저 신청한 사람들이 많아서 이제야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게 되었다. 작가인 박민규는 스스로를 "무규칙 이종 소설가"라고 부르고 있는 만큼, 이 소설의 문체나 전개방식이 "가볍다"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색다르다. 읽는 재미가 상당하고, 책이 전해주는 메시지도 인상 깊어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팀 자체에 대해서도 호감이 급상승하였다. 내친김에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을 보았다.

사실, 요즘 비디오 대여점이 요즘 문을 다 닫는 추세라 영화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최신영화이거나, 오래되었더라도 흥행에 성공하고 많은 사람들이 본 인기있는 영화였다면 불법으로 다운 받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5년전(2004년)에 개봉하고서 금방 내려버린, 흥행에 참패한 영화라 아무도 이 영화파일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결국 곰TV에서 제공하는 VOD서비스에 이 영화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구매하여 보았다.

다 보고 나서 열살난 아들이 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국가대표]랑 똑같네"

[국가대표]를 비롯한 많은 영화에서 말한다. 꿈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라고. 끝없이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꿈을 이룰 수 있을것이라 희망을 품게 한다.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는 감사용이 1루 수비를 하다가 전력질주하던 주자와 부딪혀 넘어지고, 그때 다친 팔로 계속 공을 던지고, 9회2사만루에서 더이상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던지겠습니다"고 말한다. 그리고 패배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여 마침내 1승을 거둔다. 이것이 진정한 "프로"의 모습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그들은 "프로"가 되기를 거부한다. 프로팀 못지않은 어느 실업팀과의 경기에서, 그들은 멋진 호수비를 펼친 자기편 수비수에게 "뭐하는거야" 야단을 치고, 상대편 투수에게서 홈런을 뽑아낸 타자에게 "뭐에요"라고 핀잔을 준다. 심지어 경기후에 그들은 외야로 굴러간 공을 쫒다가 잔디에 핀 들국화가 너무 예뻐서 공은 팽개치고 엎드려 꽃구경을 했던 선수를 그날의 MVP로 선정한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그들은 이미 "프로"가 되기위해, "끝까지" 노력하기위해 가정도 버리고 건강도 버렸지만 결국 좌절한 인생들이었다. 그들은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삼미슈퍼스타즈의 정신"으로 "프로"가 되기를 거부하는 삶을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끊임없이 노력하여 최고의 "프로"자리에 오르고 난 뒤 허리부상을 당해버린 박철순과 같은 인생을 그들은 거부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본다. "프로"가 되라고, 최고가 되라고, 안되더라도 최고가 되는 꿈을 가지고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질거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속임수가 아닐까하고. 감사용이 삼미슈퍼스타즈에 있으면서 아무리 노력을 해봐야 박철순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1승은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박철순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감사용은 박철순의 1위자리를 빛내주는 조연으로서 끝나는 운명이다. "프로"의 야구에서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삼미는 오늘도 OB와 싸워 패한다. 그러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싸워 20패 뒤의 1승을 거두면서 다시 희망에 빠진다. "그래, 우리도 할 수 있어. 더 열심히 하자구."  소중한 1승 뒤에 이어지는 20패. 그리고 OB는 삼미의 20패를 발판삼아 20연승을 달리고 1위가 된다.

꿈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최고"가 되어야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최고가 되기위해 달려가도록 부추기는 세상은 어쩌면 기존에 1위 자리를 차지한 자들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부추기는대로 힙겹게 빠르게 달리다보면 결국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자신의 모습에 언젠가 절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p.s 어쩌면 실제의 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들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보다는 [슈퍼스타 감사용]의 모습이 더 가까울 것이다. 명색이 "프로선수"이므로, 비록 국가대표출신은 아니지만 이기기위해 무던히 노력하였고 그럼에도 연속으로 패배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그래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속에서 자신들의 패배를 "자본주의의 치열한 경쟁을 거부하는" 모범으로 설명하는 것을 낯설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슈퍼스타 감사용]의 선수들의 모습보다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의 선수들의 모습이 더 마음에 든다.

p.p.s [슈퍼스타 감사용]의 실제 인물인 감사용씨의 근황. 어릴적 살았던 진해에서 리틀 야구단을 만들어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