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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_평

[스피벳] 읽다

flogsta 2009. 12. 9. 18:19
스피벳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레이프 라슨 (비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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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Selected Works of T.S.Spivet] 이다. 우리말로는 [T.S.Spivet 작품 선집
(選集)]정도가 될것이다.  한국어판의 부제는 [어느 천재의 기묘한 여행]이라고 되어있다. 도해 (일러스트레이션)를 잘 그리는 천재소년이 자신이 사는 서부에서 동부까지 여행을 하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말해 놓고 나면 참 밋밋하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글의 줄거리를 도와주는 수많은 도해 (illustration)와 주석들이 글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본문및 여백에 그려진 도해에 의해 재미가 배가되고 있다. 아니, 이 책에서 도해가 빠지면 재미가 없다고 말할수도 있을것이다.

이 책에서 도해가 하는 역할은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겠다.

첫번째는, 짧은 순간 지나가는 장면을 붙잡아 그 뒤에 있는 배경이나 등장인물의 속마음, 긴장관계등을 독자들이 알 수 있게 드러내 주는 역할이다.

최근에 아들이 재미있게 읽었고, 나도 덩달아 읽었던 [율리시스무어]나 [센츄리게임]에서는 삽화보다는 줄거리에 관련된 사진을 많이 끼워넣음으로써 글의 흐름에 몰입하게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데, [스피벳]에서는 때로는 유머스럽고 엉뚱하기도한 도해들을 이용해 짧게 지나가는 재미있는 순간을 길게 느끼게해 준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주인공의 손끝을 떠난 농구공이 시합종료 휘슬이 울리고 난 뒤 림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찰나의 순간을 여러개의 스틸컷을 이용해 극단적으로 길게 늘려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과 비슷한 기법이다.

바로 이런거 말이다


예를 들면, 워싱턴에서 주인공을 초청하는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누나에게 알리자,

"뭐?"
"음......"

이라는 짧은 대화가 오간다. 그리고 그 대화 사이에 화살표가 그려져있다.
그리고 이 짧은 대화속에 서로의 머리속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생각들을 도해로 설명하고 있다.

이 도해 속에서 독자들은 주인공과 누나의 심리상태, 성격, 둘 사이의 긴장감, 과거에 있었던 일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밋밋한 줄거리 속에서 유머를 첨가하기도하고, 글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미묘한 심리를 전달하는 역할이다..


위의 도해는 막내동생인 레이턴이 죽기 전과 죽은 다음의 가족간의 대화 패턴의 변화를 보여준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의 슬픔이 드러나고 있는 도해이다.



세번째는, 지식의 전달이다. 열두 살 소년이 알고 있다고는 믿기 어려운, 신기하고 전문적인 지식들이 도해를 통해서 전달된다.

예를들어 보자.
"파이란"의 주연배우인 최민식이, 영화속에서 자신의 연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정말로 울때는 얼굴을 찌그러뜨리며 운다. 영화속 멋있는 주인공처럼, 눈물만 뚝 떨어지지 않는다"

웃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음의 도해를 보면

억지로 웃는 웃음은 눈이 웃지 않고 입술근육만 움직여 웃는다. 반면 진심으로 웃을때는 눈에 주름이 잡히면서 얼굴을 "찌그러뜨리면서" 웃는다. 이것을 "뒤첸미소"라고 부른다. 영화를 볼때, 웃음을 짓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람이 위의 그림중 어디에 해당하는 웃음을 짓는지, 그리고 과연 그 사람은 사교적인 웃음으로 웃는 것인지 진심으로 웃는 것인지 영화 내용을 잘 살펴보자. 내 기억으로는 저런 웃음은 대개 "내키지 않는 손님을 맞아 억지로 공손한 척하는 점원"에게서 볼 수 있는 웃음인것 같다. ㅋ



참고로, 옥의 티를 하나 소개할까한다. 428쪽에는 주인공이 워싱턴에서 자신을 태우고 다니는 자동차의 운전사인 "스팀슨"을 만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사람이 인사를 하면서 

"전에 만난 적 있지?"

라고 말한다. 책의 어디에서 이 사람과 주인공이 만났는지 몰라서, 이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을 찾기 위해 책을 처음부터 다시 봤으나, 찾을 수 없었다.
작가가 원래 이 책을 구상했을때는 주인공이 열두 살 천재소년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의 감옥에 갖려 옛날을 회상하는 예순 가까운 남자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천재소년으로 주인공이 바뀌었다고 한다.  또, 작가가 직접 도해를 그리면서 도해에 맞게 줄거리를 다시 수정하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아마 그러는 와중에 줄거리가 바뀌었기에 수정해야할 대사를 깜빡하고 그대로 놔 둔 모양이다.

아니면, 원문의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역을 한 것일수도.... 영어로 된 원문을 구할 수 있으면 한번 확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