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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_평

진중권의 "이매진" 읽다

flogsta 2009. 10. 15. 20:21

진중권의 이매진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진중권 (씨네21,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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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말에 이 책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은 영화비평이 아니다.
담론의 놀이다.

몇년전,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을 영화를 보면서--정확히는 비디오를 빌려 보면서--보냈던 적이 있다. 영화를 보다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공책에 끄적거려 놓기도 했다.

그 당시에 뭘 알았겠는가?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여 영화에 대한 비평가들의 옥음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떄도 아니었고...


영화에 대한 감상은 순전히 나만의 몫이었고, 내가 느낀대로, 내가 생각한대로 영화에 대해 써내려가면 되는 거였다.


주인공이 마음에 들면 주인공 이야기만 계속하다 끝내고

영화의 줄거리중에서 내 추억과 비슷한 점이 있으면 그 추억에 대해 쓰고,
철학적인 내용이라면 그에 대해 얕은 문제의식을 대책없이 하나 던져놓고선 끝이었다.

그렇게만 해도 충분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영화를 보고나면 그에 대해 쓰기전에 다른 사람들이 무엇에 대해 써놓았는지를 확인하지 않으면 글을 쓰기가 두려워졌다.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겨우 이정도 생각밖에 못하는 놈이었어?

하고 비웃을까봐 두렵다.


그래서 진중권이 영화를 보고 자기 마음대로 끄적여 내려간, 자기 말마따나 한바탕 "담론의 놀이"를 써 제껴간 이 책을 읽고 참으로 부러움을 느낀다. 이 정도 지식과 문장력을 갖추고 있다면 글쓰기가 얼마나 즐거울 것인가?

미학에 대해서는 아는바 거의 없어서 그가 언급한 많은 사람들이나 어록들을 알거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 책에서 뭔가 내 눈을 끄는 몇가지를 적어두려한다.
나중에 다른 글을 쓸때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해서.


1. 슈렉
CG는 인간에 가까울수록 사실성이 떨어진다. 슈렉의 경우, 슈렉과 당나귀는 매우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보이나, 피오나공주는 어딘가 어색하고 딱딱해 보인다.

섬뜩함의 계곡(uncanny valley)이라는 것이 있는데, 일본인 마사히로 모리가 말한 개념으로, 로봇의 인간 유사성이 친밀도를 증가시키다가, 어느 정도선이 되면 오히려 혐오감(시체나 좀비를 보는 것같은)을 불러일으키고, 이 단계를 지나서 더욱 인간과 흡사하게 되면 다시 친밀도가 증가해서 최고조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은 실사로 훨씬 잘 표현할 수 있으니, 굳이 모든 것을 CG로 다 만들 필요가 뭐가 있는가, 인간은 실사로, 나머지 동물이나 괴물등은 CG로 표현하면 되지 않는가 제안한다.


2. 블레이드 러너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 데커드가 레이첼과 도망치려할때에 문 밖에서 종이로 접은 유니콘을 발견하는 장면이 데커드도 레이첼과 마찬가지로 리플리컨트(복제인간)라는 것을 암시한다고 여러 사람들이 말을 하던데, 나는 왜 그런지 몰랐다.
이 책에서는 친절하게 그 이유를 설명해 놓았다.

타이렐사의 회장은 데커드에게 "레이첼"을 소개하며 레이첼이 리플리컨트인가 아닌가를 맞혀보라고 한다. 데커드는 몇가지 조사를 한 후에 레이첼을 리플리컨트라고 판정을 내린다. 타이렐사의 회장은 감탄하였지만, 정작 레이첼은 데커드의 아파트로 찾아와 자신이 리플리컨트가 아니라 진짜 인간임을 주장한다. 이때 데커드가 이렇게 말한다.


여섯 살때를 기억해? 남동생이랑 지하창문을 통해 빈집으로 들어갔었지? 의사 놀이를 하러. 당신 차례가 왔을때 당신을 도망쳤지. 기억해?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지? 이식된 거야. 당신의 추억이 아니라 회장 조카의 기억이야.

그 후 데커드는 파아노에 앉아서 유니콘이 나오는 꿈을 꾼다. 그 꿈은 누구에게도 이야기 한 적이 없었지만, 레이첼을 잡으러 왔다가 그냥 돌아간 형사 가프는 유니콘을 접은 종이조각을 남겨둔다. 데커드도 레이첼과 같이, 조작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데커드의 꿈속에서 나온 유니콘을 형사 가프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물론, 이론적으로 본다면 형사 가프는 우연히 유니콘을 접었을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장면이 감독의 의도대로 만들어지는 영화에서, 이 장면이 주는 암시는 무엇이겠는가?

 



3. 뷰티플마인드
뷰티플 마인드는 초반에 재미있다가 뒤로 가면서 뭐가 뭔지 이해가 안가게 된 영화중 하나이다. 하지만 내시가 상당히 유명하고 중요한 역할을 한 수학자인것은 틀림없나보다. 비록 그의 이론인 내시 균형이 여러 반론에 직면하고는 있지만.

예를 들어 A와 B가 있다고 하자. 10달러의 돈이 있고, 그 돈을 분배할 권리를 A가 쥐고있다. 두 사람이 합의에 실패하면 아무도 돈을 못 받는다. 그럼 A는 B에게 얼마를 줄까? A는 가능한 한 많이 가지려 할테고, B는 1달러라도 받는게 아예 안 받는 것보다 이익이다. 따라서 게임은 B가 1달러를 주겠다고 A가 제안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균형에 도달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럴까?
실험경제학에 따르면, 이 게임에 참가한 이들(중 A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에게 5달러를 제안했다고 한다. 또 2달러 이하를 주겠다는 제안에는 대다수 실험자(중 B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들이 차라리 돈을 포기함으로써 상대 역시 돈을 못 받게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수학적으로는 증명이 끝난 문제인데, 왜 실제로는 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걸까? 그것은 내시 균형의 바탕을 이루는 '이기적인간'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간의 행동은 이기심만이 아니라 이타심에서 나오기도 한다는 얘기다.


RAND라는 곳에서 내시 균형에 기초하여 연구원 비서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하였는데 내시의 이론에 따르면 비서들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로 모함하는 것으로 균형에 도달해야한다. 하지만 실험에 참가한 비서들을 거꾸로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서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황당한 것은 이 실험의 결과를 보고 그들이 내린 결론. "비서들이 직무에 적합하지 못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해본다. 위의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이 서로 안면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연구원의 비서들이야 같은 직장에 근무한다는 동료의식이 있었을테니까 서로 협력하는 결과가 나온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10달러를 나눠갖는 실험에서도 피실험자들이 서로 한번도 얼굴을 대면한 적이 없이, 인터넷상의 아이디만으로 구별되었다면, 결과는 다르게 나오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직접 대면한다는것은 사람의 심리에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유권자들과 악수 한 번 하려고 시장바닥을 새벽부터 돌지 않는가? 악수 한번 했다고 투표심리가 바뀔리가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어느 한 후보에 대해 열성적으로 지지하거나 혐오하지 않는 이상, 얼굴 한번 직접 보고 악수 한번 웃으면서 하고 나면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하는 것은 경험상 사실인 것 같다.

따라서, 내시 균형은 유효하다. 단, 직접 대면하지 않는 관계내에서.



4. 라쇼몽
10년도 더 된 옛날이야기다. 잘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던, 지식에 대한 교만이 극에 달했던 때. 후배에게 사람들이 보는 시각에 따라 하나의 사건이라도 다르게 보일 수 있다며 철학적으로 아는 체를 하며 라쇼몽이란 영화의 줄거리를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그때 후배의 한 마디.

에이, 영화 줄거리가 그게 뭐예요. 정말 재미 없겠다.

뒤통수를 크게 한 방 먹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사실 이 영화를 한번도 보지 않고서 다른 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읊은 것 뿐이었으므로, 후배의 이런 기습적인 반격에 대꾸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이후로도 라쇼몽을 본 적은 없었지만 라쇼몽에 대해 언급하지도 않게 되었다.

이제, 라쇼몽을 보아도 되지 않을까한다. 옛날처럼 잘난 척할 이유가 없어졌으므로. 다른 이들이 칭찬한다고 해서 나도 칭찬해야할 것 같은 기분은 이제 들지 않으므로,


5. 피아니스트의 전설
피아노 치는 장면이 인상적일 것 같아서 한번 보고 싶다.


6. 스파이더맨3
전통적 감성이 자연물을 모방한다면 현대적 감성은 인공물을 구축한다.
전통적 감성이 인공적 환경에 반감을 느낀다면 현대적 감성은 기계화와 가속화에서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난 마지막 전통적 세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