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life)

[봄날은 간다] 보다. 본문

감상_평

[봄날은 간다] 보다.

flogsta 2009. 11. 20. 16:31
봄날은 간다
감독 허진호 (2001 / 한국)
출연 유지태, 이영애, 박인환, 신신애
상세보기


1. 사귈 때

여: 재미있는 얘기 해봐요.
남: 라면에 소주 먹으면 맛있는데. 나 재미있는 얘기 몰라요. 원래 썰렁해.
여: 재미있다.
    ...
    자고 갈래요?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짓을 해도, 사랑스러운 단계.

여자가 "자고 갈래요?"라고 한 말은, 글자 그대로 "잠만 자고 가라."는 의미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 이 글을 읽는 미혼의 남성들은
좋은 관계로 발전할수도 있는 기회를 엉뚱한 상상을 해서 망치지 말기를 바란다.^^


여: 술 취하니까 멋있다.
남: 좋다.

술 마시고 취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게 마련인데, 그 모습을 보고 "멋있다"고 말해주는 여자는 남자의 로망일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와 결혼하고 나면? 그런거 절대 없다.ㅋ



혼자 콧노래를 부르는 여자,
그쪽으로 마이크를 향하는 남자.

우리는 안다. 녹음된 그 목소리가 나중에 그 남자의 마음을 얼마나 추억에 젖게 할지를. 지나버린 과거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 그리움에 얼마나 사무치도록 만들 것인지를.



2. 불안, 위기

남: .... 그 후론 한번도 날 때린 적이 없었대. 사귀는 사람 있으면 데려오래 우리 아버지가
여: 상우씨 나 김치 못담궈.
남: 내가 담궈 줄께.

남자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망설였을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를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기로에 서 있는 그가. 어떻게 말을 꺼낼까 고민하던 그가. 느닷없이 이야기를 꺼낸다. 마치 이 순간이 아니면 말을 꺼낼 수 없는 것처럼.

김치 못담근다는 여자의 말은 결국 거절이다.

남자는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김치는 내가 담궈줄 수 있다. 그 문제가 이유라면 내가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제가 이유일리는 없다. 결국 이유는 이 남자와는 결혼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혼할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이다.

남자는 진짜 이유를 몰랐을까, 알았으면서도 모르는 척 했을까. 둘 다 가능하겠지만, 실제 몰랐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다. 현실에서는 남자들이 여자의 화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들이 훨씬 더 많기에.


남: 나 어디 좀 갔다 올께.
여: 빨리 와서 라면이나 끓여.
남: 나 일 있어.
여: 무슨 일. 내가 모르는 일도 있어? 또 어디가서 술이나 마실려고 그러지.
남: 은수씨. 내가 라면으로 보여? 말조심해.

삐걱거리는 관계, 안타까워 하지만 이미 삐걱이는 관계를 다시 붙일 수는 없는것.

서로가 그것을 알면서, 다시 붙이고 싶어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안타깝지만 점점 더 모른척하게 되는 것

다가오는 마음에 이유가 없었던 것처럼, 마음이 떠나는 것에 무슨 이유가 있으랴. 노력하는것으로 애써 붙이려해봐야 소용없는 것

서로의 자존심을 지키려 관계는 더욱더 멀어지고


3. 이별

여: 우리 헤어지자
남: 내가 잘 할께
여: 헤어져
남: 너 나 사랑하니?
여: ......
남: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여: .......
남: 헤어지자.

사랑하는 사람이 헤어질때, 김수현식 드라마에서처럼 말을 폭포수처럼 퍼붓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유와 근거를 대지 않아도, 냉담한 태도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느낌으로 아는 법. 그래서 그 앞에서는 인정하고 돌아설 수 밖에 없다.


남: 할머니, 이제 정신 좀 차리세요.

돌아오지 않는, 떠난 사랑을 기다리는 할머니에게.
하지만 그건 또한 자신에게 하는 말.


경험해 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이때 어떤 심정이 되는지.

울리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다 못해 벨소리를 바꿔보고,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수십개의 벨소리를 하나씩 눌러보고.

그녀의 집앞에서 그녀의 베란다에서 그녀의 모습이 비치지나 않을까, 그녀의 그림자라도 한번 볼 수 있을까 소망하며 밤새 기다리고 싶은 마음

그녀의 손길이 묻어있는 물건 하나라도 만지고 싶은, 애타고 분한 마음에, 차마 사람에게는 할 수 없지만 애먼 차에라도 분풀이를 하고 싶은, 그래서 내 마음을 좀 알아주었으면 하는 간절하고 애타는 마음.



4. 그 이후

여: 우리, 같이 있을까?
남: ......
여: 응?
남: ......
여: 왜?
남: ......
여: ......
남: 갈께.
여: 응, 잘 가.

몸은 다시 만났지만 마음은 이전과 같지 않은, 그래서 전과 같이 될 수 없다.

정말로 헤어지는 순간, 서로 돌아보면서, 서로 상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마지막으로 다시 돌아보면서, 머릿속으로는 어떻게하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래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어. 어색하게 손을 흔들고 서로 돌아선다.



바람 불어오는 갈대밭에서, 눈을 감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소리를 녹음하다가, 희미하게 웃음 짓는 남자.


시간이 지나고, 그토록 가슴 아프던 기억들도, 불어오는 바람에 문득 떠올라 희미하게 웃음지을 수 있는 추억으로 바꾸어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