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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재지이 <포송령> 읽다. 본문

감상_평

요재지이 <포송령> 읽다.

flogsta 2007. 3. 31. 08:10

가난하지만 글공부를 많이 한 선비, 과거 보러 가는 길에 밤에 산을 넘다가, 큰 집이 있어 하루밤 묵을 것을 청하니 주인이 아리따운 여인이라, 이리저리하다 둘은 사랑을 맹세하게 되고, 알고보니 그 여인은 귀신(또는 둔갑한 여우)이었다. 그녀를 묶고 있는 저주를 풀기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선비.......


어디선가 들은 듯한 이야기 아닌가? 영화“천녀유혼”을 비롯한 수많은 동양의 전설에 등장하는 이야기 구조이다.


17세기 중국에서 재야에 묻혀 살았던 선비인 ‘포송령’은 이러한 전설들을 수집하여 책으로 묶어냈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가 각 이야기 마지막마다 그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써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감상속에서 당시 중국(동양)의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것이어서 흥미로웠다. 몇가지 마음에 드는 구절만 예로 들어보면,


“나는 공생이 아리따운 아내를 얻은 것은 전혀 부럽지 않지만, 마음 가는 친밀한 벗을 얻은 것만은 부럽기 한량없다. 친구의 얼굴은 보기만 해도 배고픔을 잊게 될것이고, 그 목소리만 들어도 주름진 얼굴이 피어날 것이다. ”


“나는 장청땅의 고승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은 전혀 놀랍거나 신기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다시 살아났을 때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환경에 들어가서도 인연을 끊고 속세를 떠날 수 있었던 데는 탄복을 금할 수가 없다. 눈 깜짝할사이에라도 욕심에 눈이 멀면 깨달음을 얻기가 대단히 어려워지는 법인데, 하물며 장청의 고승처럼 처신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재물과 속세의 일에 초연하고 자연을 벗삼는 것은 동양의 선비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여기는 일 중의 하나이지만, 문득 그들의 속세탈피경향이 현실정치에 뛰어들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데 대한 좌절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 아닌지, 또는 속세일(현실정치)에 초연한 것이 선비다운것이라는 걸 강조함으로써 권력을 추구하는 경쟁자들의 숫자를 줄이려는 권력엘리트 집단의 의도는 아니었는지?


초야에 묻혀 유유자적하는 선비들을 칭송하는 글을 읽노라면, 어릴 때 이웃집 아저씨의 말씀이 생각난다. 아저씨는 늘상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에 너무 관심이 많아! 선진국 사람들은 투표율이 50%도 안돼!” 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마치 정치에 관심이 없어지면 선진국이 되는 것처럼...... 하지만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