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life)

인지 부조화 이론 본문

낙서장

인지 부조화 이론

flogsta 2007. 3. 30. 21:48

이건 원래는 정치 문제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큰 정치문제가 되어버렸다. 다름 아닌 황우석 사건. 2005년 논문이 조작으로 밝혀지고 교수직을 은퇴하는 마당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촛불집회를 하겠다고 한다. 끝까지 믿는다는 거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

http://kr.blog.yahoo.com/psy_jjanga/1456963.html


한번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어떤 실험에 참여했습니다. 듣기로는 상당히 중요한 실험이라고 들었는데 정작 실험실에 들어가 앉으니 3+19=? 같은 단순한 산수문제 수백 개를 주면서 풀어보라네요.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실험하기로 했으니 해 줘야죠. 자그마치 1시간 동안 머리에 쥐가 나는 것을 참아가며 문제를 다 풀고 나니 실험조교가 당신에게 실험 참가비라며 돈을 1천원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문지 하나를 주면서 여기에 응답해달라네요. 그 설문지에는 이 실험이 재미있었는지, 당신이 볼 때 이 실험의 의미나 가치는 얼마나 될 것 같은지를 1점부터 10점까지 평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 당신이라면 이 실험이 얼마나 재미있었고, 얼마나 의미 있었다고 평가하시겠습니까?

그러면 똑같은 상황인데 다음 하나만 바뀌었다고 생각해보죠.
위와 똑같이 지루한 실험을 마치고 나니 조교가 다가와서 10만원을 주면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똑같은 설문에 응답해달라고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당신이 1천원을 받았을 때 내린 평가와 10만원을 받았을 때 내린 평가가 다를까요?
다르다면 어떤 경우에 이 실험이 더 재미있었거나 의미 있었다고 평가할 까요?


이건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 라는 심리학자가 1957년에 했던 실험입니다.
http://psychclassics.yorku.ca/Festinger/

얼핏 보기엔 돈을 많이 받은 경우에 실험을 더 호의적으로 평가해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험 결과에 따르면 결과는 그와는 정 반대였습니다.
1천원을 받은 사람들이 오히려 이 실험을 더 재미있었다거나 더 의미있었다고 평가했고, 돈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사실 그대로 이 실험은 지루하기만 했다고 평가했죠.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페스팅거는 이걸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로 설명했습니다.

천원을 받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이 사람들은 1시간 동안 아주 지겨운 일을 했는데 딸랑 1천원 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이 사람들의 머릿 속에 입력된 경험은 다음 둘입니다.
1) 지루한 일을 했다. 2) 근데 천원밖에 못 받았다.
이 둘만 보자면 3) 내가 멍청한 짓을 했다. 라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멍청하지 않다고 믿는다는 점입니다.
결국 자기는 멍청하지 않은데 멍청한 짓을 했다면 뭔가 모순이 일어납니다.

이런 모순을 페스팅거는 ‘인지부조화’ 라고 불렀습니다.
일단 인지부조화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긴장하고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부조화를 해소하려고 하죠.

즉,
“그래도 이 실험은 재미있었거나 뭔가 학문의 발전에 아주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돈 때문에 이 일을 한 게 아니라 이 실험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한거다.”
라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10만원을 받은 사람들은 이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자기가 왜 1시간 동안 이런 멍청한 실험을 해야 했는지 충분히 설명할 수 있거든요.
1시간 동안 땅을 파 보세요. 10만원이 그저 나옵니까?
그러니 이 사람들은 실험 자체가 의미 있었다거나 재미있었다고 평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은 돌이킬 수 있고, 어떤 것은 돌이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미 벌어진 일 (1시간 동안 지루한 실험을 했다. 돈은 천원 밖에 못 받았다)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하지 않은 일(설문에 어떻게 응답할까?)는 돌이킬 수 있죠.
이런 경우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돌이킬 수 있는 것을 맞춰갑니다.

만약에 1천원 받은 사람들에게도 돈을 받기 전에 설문부터 응답하라고 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겁니다.
이미 재미없다고 말해버렸는데 딸랑 1천원만 받았으면 정말 열 받았겠죠...

페스팅거가 이런 실험을 하게 된 계기는 당시 벌어졌던 종말론 소동 때문이었습니다.
다음은 그가 1956년에 쓴 논문 “예언이 틀렸을 때(When prophecy fails)"의 이야기입니다.

1950년대 초반 미국의 한 사이비종교 교주가 중대발표를 합니다.
자기는 수호신들로부터 신탁을 받았는데, 조만간 큰 홍수가 날 것이고 진짜 신도들만 홍수 전날 자정에 비행접시로 구출될 것이라고 선언을 한 겁니다. 그 종교 신도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모두 직장을 정리하고 퇴직금을 이 종교단체에 기탁했죠.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신실한지를 표시하기 위해서 그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자신들만 구원받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려 애썼습니다. 물론 이게 모두 돈을 긁어모으려는 사이비교주의 사기극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없는 연민과 경멸을 보내줬겠죠.

마침내 지정된 구원의 날 자정, 모두들 모여서 비행접시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비행접시도 안 왔고, 홍수도 일어나지 않았죠.

그런데 교주가 나타나서 다시 중대발표를 합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에 대한 보답으로 결국 전 세계가 구원을 받았다는 겁니다!!!
신실한 교도들의 믿음에 감동한 수호신들이 홍수로 지구를 멸망시키는 일을 연기했다는 거죠.
모인 사람들은 (놀랍게도) 기뻐하며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전보다 더 신실한 교도들이 되었다죠...-_-;;;;;;


페스팅거가 봤을 때, 이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연하죠. 우리가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예언된 날 비행접시가 안 왔다면 예언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논리적으로 말이 되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논리적으로 간명한 결론 대신에, 보다 복잡하고 이젠 증명할 수조차 없는 새로운 결론을 선택한 겁니다.
애초부터 홍수는 없었다고 보는 게 더 간단합니까, 아니면 원래 있었는데 무슨 이유로 연기되었다고 보는 게 더 말이 됩니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까요?

결국 저질러진 일과 저지르지 않은 일의 차이, 인지부조화 때문이었습니다.
그 신도들은 이미 많은 것을 저질러 버렸습니다.
직장도 관뒀고, 저축했던 돈도 다 써버렸습니다. 주변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도 땅땅 쳐댔죠.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게 다 가짜였다.” 고 하자면 아주 심각한 인지부조화에 빠지는 겁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것 같은 불안감과 두려움이 눈앞을 가립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통을 주는 현실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믿음을 선택한 겁니다. 그러면 오히려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죠. (남들이 볼 때는 그저 현실도피로 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이들은 사이비 교주의 사기극에 놀아난 바보가 아니라, 자신들의 믿음으로 지구를 구원한 위대한 인물들이 되는 거니까요.


이 얘기를 지금 하는 이유는... 다들 아시겠지만, 그 작자 때문입니다.
작금의 사태는 페스팅거가 1956년에 보고했던 사건과 하나도 다르지 않군요.

여튼 이로 인해 인지부조화에 빠진 분들에게 드릴 말씀은,
이번 사태에선 속아 넘어가는 게 당연했다는 겁니다.
안 속은 사람이 어디 있던가요? 심지어 <사이언스>지도 속았습니다.

학술논문을 평가할 때 연구결과의 진위를 의심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일단 누구든 그 결과가 사실일 것이라고 전제하고, 그런데 그게 말이 되는지를 확인하는 거죠. 마음먹고 속이면 다 속을 수 있는 겁니다. 저도 속았습니다. 연구원 난자 추출에 대해서는 투덜댄 적 있지만, 설마 연구결과 전체가 뻥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저도 PD수첩이 좀 오바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래도 몇 개는 진짜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만,
지금 황우석의 작태를 보면 그런 기대는 그에게 너무 과분했던 것 같습니다.

여튼, 이번에는 모두가 다 속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태도를 돌이켜도 됩니다.
상식적으로 속는 게 당연했으니까요.

===============================================================

아래는. 2005. 12. 19. 수정분

그래도 한가지 문제는 남습니다.

아이러브황우석 카페에 가입했거나 난자기증 서약 등을 하면서
황우석에 대해서 깊이 개입한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은
별로 "저지른 일"이 없다는 거죠.

그들 대부분은 황우석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공식적으로 밝힌 일 조차 드물겁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황우석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즉,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태도를 바꾸기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그건 우리가 대상을 파악하는 서로 다른 두 채널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논리적으로 옳고 그른 것과, 좋고 싫은 것은
서로 다른 정보이고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서 우리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로 우리의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좋고 싫음입니다.

황우석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말투는 간단하고, 태도는 명확하며
언론은 그를 성실하고 검소한 사람으로 보여줬습니다.
게다가 인상까지 좋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가치가 중시하는 거의 모든 요소를 갖춘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인물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미국 대통령 워렌 하딩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클린트이스트우드의 영화 <앱솔루트 파워>의 모델이기도 한 대통령 하딩은
겉보기엔 그 자체로 대통령인 외모였지만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사람입니다.